인간은 다양하고, 그래서 두렵다.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 어제와 오늘의 사이에는 정확한 대상 없이 언짢아하는 사람들이 득실거린다. 때로는 성별과는 무관한 인간의 문장을 쓰고 싶었다.
사람의 눈을 관찰하는 시간보다 동공 없는 스크린을 응시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눈을 감고도 태연히 다닐 수 있었으면, 텍스트만으로도 완전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면. 차라리 모든 구어가 시어가 될 수 있다면. 맹목적인 동경. 편협은 늪처럼 질척거리고 스스로를 더 깊은 편협 속으로 격리시키려 한다. 저마다의 세계 간에서 패를 가르고 서로를 가두느라 모두가 정신이 없다. 쉴 틈 없는 긴장 속에 목이 마르다. 나는 목소리를 낮춘다.
옷소매에서 지워지지 않는 과거가 해마다 새로워진다
나는 쉽게 사랑하고 쉽게 지치며 최선을 다한다
나의 경우, 아예 틀려먹은 사람보다 그 경계에 얼쩡거리면서 틀림과 그렇지않음 사이를 넘나들려는 태도가 더 싫다. 물론 애초에 그 경계는 나와 너의 차이겠지만.
옛 애인을 다시 만나서는 그녀가 그토록 예뻤을 줄이야 미처 몰랐다며 속으로 후회를 삼키는 일은 영화에나 나오는 판타지일 뿐이라는 게 평소 성진의 지론이었다. 그간 사랑했던 여자들을 그는 여전히 사랑하고, 또 그런 식으로 영원히 사랑할 테지만 그건 ‘다시’ 사랑하는 일은 없으리라는 뜻이었다. 그건 한 번 우려낸 국화에 다시 뜨거운 물을 붓는 짓이나 마찬가지니까. 아무리 기다려 봐야 처음의 차 맛은 우러나지 않는다. 뜨거운 물은 새로 꺼낸 차에다만. 그게 인생의 모든 차를 맛있게 음미하는 방법이다. 마찬가지였다. 봄날의 거리에서 재회하니 그런 식으로 정연은 예뻤다. 그에게 예뻤던 여자들은 여전히 예쁘고, 또 그런 식으로 영원히 예쁘겠지만 ‘다시’ 예쁠 수는 없었다.
김연수,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처음의 차 맛’그것도 특정stp가관여하는, 가늠할수없게수많은가능성들중의하나일뿐일텐데
-처음의 단회성. 슬프다. 내가슬프기때문인것같아서
-‘다시’에 나는 왜 집착하는가
(via dora-dora)
박미선이 오늘 방송 중에 ‘왠지 내가 챙겨줘야만 할 것 같은 모성애를 일으키는 남자'와 ‘왠지 내가 바로잡아줄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나쁜 남자'는 절대 만나지 말라고 했는데 근래 들은 말 중 최고의 명언이다. 갱생은 자기 몫이지 누가 시켜주는 게 아니라고, 정말.
우리는 그럴 듯한 말들로 버무려진 설탕같은 문장들 속에서 그 교묘한 포장을 구별해낼 줄 알아야 해요.
우아함은 인간에 대한 예의와 성실함 딱 그것. 어느 누구에게도 무례하지 않고 최대한 무해할 것, 그걸 지켜야겠구나 생각한다.
(via saintpoetry-blue-deactivated201)
수 많은 커플이 헤어진다. 상대방이 나에게 맞춰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가 상대방에게 맞춰줄 수 없다는 이유로. 이별을 택한다. 헤어지면 모든 게 끝이다. 지금껏 사귀면서 나눴던 달콤한 말들. 서로를 생각하던 시간. 만날 생각에 설레던 기분. 선물을 준비하며 상대방이 기뻐할 모습을 떠올리던 순간들. 모두 사라진다. 기억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데는 여지가 없다. 소개를 받아 만났던 첫눈에 반해 만났던 잘 맞지 않으면 헤어진다. 많은 것을 잃는데도 헤어진다. 그만큼 결정적이다. 나는 일식을 좋아하는데 너는 한식을 좋아해. 나는 액티브한데 너는 젠틀해. 안맞는 이유도 가지가지다.
안맞아서 헤어진 커플은 이별을 아름다움으로 포장한다. 상대방의 외도에 의해서, 싸움에 의해서 헤어진 것이 아니라는 이유다. 좋게 헤어졌다고 말한다. 너의 행복을 위해 헤어질게, 라는 말만큼이나 거짓이다.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말처럼 역설도 없다. 이별의 상처를 어루만지려는 노력이 아련하다. 그럴려면 처음부터 왜 만났던 것인가. 상대방을 만나는 이유를 물어보면 대다수가 나와 잘 맞아서, 라고 한다. 잘 맞을 때만 사귀고 안맞으면 헤어진다는 것인가. 연애와 사랑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잘 맞는다고 사귀고 안 맞는다고 헤어지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그래서 연애는 지독하게 아름답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연인이 되고 결혼한다는 것은 수 많은 가능성의 결합이다. 나와 잘 맞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 그래야 오래 사귀고 결혼할 수 있다면 생면부지의 두 남녀가 만나 결혼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취미와 취향을 공유해야만 결혼할 수 있단 말인가. 형제자매도 살아온 환경이 다른 것처럼 모두가 살아온 환경은 다르다. 그럼에도 우리가 연인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끌림’에서다. 끌림은 취향을 초월한다. 그리고 사랑을 가능케 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잘 맞고 안 맞고는 중요하지 않다. 뭘 해도 사랑스럽게 보여야 사랑이다. 연인들이 헤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랑하지 않거나, 싫어졌기 때문이다.
연애는 서로 마주보고 만나 같은 곳을 바라보는 과정이라고 한다. 서로에게 끌려 마주보고 함께 하나의 목표(사랑이겠지)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나와 여자친구는 정말 안 맞는다. 취향도 정 반대, 관심분야도 비슷한 것 하나 없고 식성도 다르다. 그런 그녀를 위해 시간을 쏟고 돈을 쓰면서 단 한 순간도 후회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나로 인해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라는 생각은 아픔이나 피로감을 뒤로 감추게 한다. 그게 힘들어 서로를 서로에게 맞추려고 한 적은 없다. 나는 나대로, 당신은 당신대로. 내가 처음 끌린 당신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답다. 나는 너랑 안 맞는다. 다만 나는 너를 사랑한다.
어제는 나와 그녀가 만난 지 6년째 되는 날이다.
이 글을 다 읽고 나니, 머리가 아주 맑아졌다.
맞아 다른 이유는 없어 사랑하지 않아서야
(via hongshhartnett)